장욱진  張旭鎭

1917 - 1990

1917년 11월 26일 충남 연기에서 태어난 장욱진은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 그리기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전국 규모의 소학생 미술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고등학교 때 출품한 작품도 최고상을 받으며 그의 재능은 대외적으로 인정받게 된다. 일제 강점기 때 동경의 제국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하고 돌아온 그는 해방 직후 국립 중앙박물관에서 잠시 근무한 후, 1954년부터 1960년까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봉직한 것 외에는 줄곧 한적한 시골-덕소, 수안보, 신갈 등지-에 화실을 마련하여 오로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 속에서 그림에만 전념한다.

그림과 주도(酒道) 사이를 오가는 자유로운 무애의 삶을 살며 신명 하나로 그림을 그리는 장인으로 살기를 고집했던 그를 세상의 눈은 기인으로 여긴다. 앙가주망, 2.9동인전 외 주로 개인전을 통해 발표된 그의 작품들은 작은 캔버스 안에 간결한 대상의 처리와 조형성으로 밀도 높은 균형감을 느끼게 한다. 주로 주변 풍경, 가축, 가족을 소재로 다루었으며 그 안에서 유희적인 감정과 풍류적인 심성을 표출한다. 기법면에 있어서는 동양화와 서양화의 장벽을 넘나들며 우리의 전통 요소들을 현대에 접목시켜 조형적인 가능성과 독창성을 구현하였다. 전업인 유화 외에 먹그림, 도화, 판화 등을 시도한 것은 자신의 실체를 끊임없이 새롭게 하려는 지극한 작가 정신의 발로이다.

작가가 남긴 그림 외에도 여러 권의 화집과 수필집 ‘강가의 아틀리에' 등이 있으며, 유작전 및 회고전이 열렸다. 화가 장욱진은 평생을 자연 속에서 “나는 심플하다"를 외치며 심플한 삶을 통해 
순수하고 동화적이면서도 이상적인 내면세계를 그림에 표현하였다. 1990년에 작고한다.

장욱진  張旭鎭

1917 - 1990

1917년 11월 26일 충남 연기에서 태어난 장욱진은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 그리기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전국 규모의 소학생 미술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고등학교 때 출품한 작품도 최고상을 받으며 그의 재능은 대외적으로 인정받게 된다. 일제 강점기 때 동경의 제국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하고 돌아온 그는 해방 직후 국립 중앙박물관에서 잠시 근무한 후, 1954년부터 1960년까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봉직한 것 외에는 줄곧 한적한 시골-덕소, 수안보, 신갈 등지-에 화실을 마련하여 오로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 속에서 그림에만 전념한다.

그림과 주도(酒道) 사이를 오가는 자유로운 무애의 삶을 살며 신명 하나로 그림을 그리는 장인으로 살기를 고집했던 그를 세상의 눈은 기인으로 여긴다. 앙가주망, 2.9동인전 외 주로 개인전을 통해 발표된 그의 작품들은 
작은 캔버스 안에 간결한 대상의 처리와 조형성으로 밀도 높은 균형감을 느끼게 한다. 주로 주변 풍경, 가축, 가족을 소재로 다루었으며 그 안에서 유희적인 감정과 풍류적인 심성을 표출한다. 기법면에 있어서는 동양화와 서양화의 장벽을 넘나들며 우리의 전통 요소들을 현대에 접목시켜 조형적인 가능성과 독창성을 구현하였다. 전업인 유화 외에 먹그림, 도화, 판화 등을 시도한 것은 자신의 실체를 끊임없이 새롭게 하려는 지극한 작가 정신의 발로이다.

작가가 남긴 그림 외에도 여러 권의 화집과 수필집 ‘강가의 아틀리에' 등이 있으며, 유작전 및 회고전이 열렸다. 
화가 장욱진은 평생을 자연 속에서 “나는 심플하다"를 외치며 심플한 삶을 통해 
순수하고 동화적이면서도 이상적인 내면세계를 그림에 표현하였다. 1990년에 작고한다.

주소ㅣ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로 119-8
대표전화ㅣ031-283-1911
메일ㅣinfo@ucchincha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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